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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KL 법률사무소 권단 변호사의 지식재산권 칼럼

 

AI가 읽어주는 책, ‘복제’의 주체는 누구인가? : 1심과 2심 판결의 엇갈린 시선과 그 함의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며 우리 일상 깊숙이 파고들고 있습니다. 이제 AI는 그림을 그리고, 소설을 쓰며, 심지어 사람의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편리함 이면에는 언제나 ‘저작권’이라는 복잡한 법적 쟁점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최근 서울고등법원에서 AI 음성 변환 기술인 TTS(Text to Speech) 서비스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판결이 나왔습니다. 동일한 사안을 두고 1심과 2심이 정반대의 판단을 내놓은 것입니다.

 

이 사건은 AI 생성 콘텐츠가 타인의 저작권을 침해할 때, 그 법적 책임을 서비스를 만든 ‘기업’에게 물을 것인지, 아니면 버튼을 누른 ‘이용자’에게 물을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판단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본 칼럼에서는 해당 판결의 사실관계와 법적 쟁점을 분석하고, 달라진 판단 기준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짚어보고자 합니다.

 

사건의 재구성: 내 목소리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사건의 발단은 오디오북 플랫폼을 운영하며 특정 도서들에 대한 ‘오디오콘텐츠 배타적발행권’을 보유한 원고(A사)가, 전자책 플랫폼을 운영하는 피고(B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피고 B사는 자사의 앱에서 전자책을 구매하거나 대여한 이용자들에게 AI 기반의 TTS 기능을 제공했습니다. 이용자가 이 기능을 실행하면 전자책의 텍스트가 AI 성우의 목소리로 변환되어 흘러나옵니다.

 

원고는 피고의 TTS 서비스가 자신들이 독점적으로 보유한 ‘오디오콘텐츠 배타적발행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피고가 무단으로 책 내용을 오디오 파일로 ‘복제’하여 송신했다는 것입니다. 반면 피고는 “우리는 도구만 제공했을 뿐, 실제로 변환 버튼을 눌러 소리를 재생(복제)한 것은 이용자이며, 이는 사적인 이용에 해당하므로 저작권 침해가 아니다”라고 맞섰습니다.

 

핵심 법적 쟁점: 누가 ‘복제’의 주체인가?

 

이 사건의 핵심은 ‘복제 주체’를 누구로 볼 것인가에 있었습니다. AI 기술을 통해 텍스트가 음성 파일(wav)로 변환되어 기기 메모리에 잠시 저장되었다가 재생되고 삭제되는 과정에서, 법적으로 ‘복제 행위’를 한 사람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만약 이용자가 복제의 주체라면, 개인이 집에서 책을 듣기 위해 복제한 것이므로 저작권법 제30조 ‘사적 이용을 위한 복제’ 면책 규정이 적용되어 합법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서비스 제공자(기업)가 복제의 주체라면, 기업은 영리를 목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므로 사적 이용 면책을 받을 수 없어 저작권 침해 책임을 지게 됩니다.

 

1심의 판단: “버튼을 누른 건 이용자, 기업은 도구 제공자일 뿐”

 

서울중앙지방법원(1심)은 피고(기업)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재판부는 오디오 파일이 생성되고 저장되는 장소가 ‘이용자의 단말기(PC나 스마트폰)’라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TTS 기능은 이용자가 필요에 따라 자유 의지로 실행 버튼을 누를 때만 작동하며, 생성된 파일도 이용자의 기기 내에서만 잠시 머물다 사라집니다.

 

1심 법원은 피고가 TTS 기능을 제공하여 이용자들의 복제 행위를 도왔을 수는 있어도(방조), 복제의 직접적인 주체는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용자가 개인적인 독서를 위해 TTS를 사용하는 것은 ‘사적 이용을 위한 복제’로서 허용된다고 판단하여 피고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전통적인 저작권 법리, 즉 물리적인 행위자와 파일의 생성 위치를 중시한 결과였습니다.

 

2심의 반전: “시스템을 설계하고 통제하는 자가 주인이다”

 

하지만 서울고등법원(2심)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고 피고(기업)가 저작권(배타적발행권) 침해의 주체라고 판결했습니다.

 

2심 법원이 주목한 것은 ‘실질적인 통제와 지배’였습니다. 비록 파일이 이용자의 기기에 생성되지만, 그 과정은 철저히 피고가 설계한 ‘전용 앱’ 내부에서만 이루어진다는 점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첫째, 피고는 TTS 엔진을 선택하고 앱에 탑재하여 기능을 ‘개발·관리’했습니다. 둘째, 생성된 오디오 파일은 범용적인 파일이 아니라 피고의 앱 내부 저장소나 캐시 메모리에 암호화되어 저장되며, 이용자가 이를 밖으로 꺼내거나 마음대로 다룰 수 없습니다. 셋째, 가장 중요한 판단 근거로 ‘자동 삭제 설계’가 꼽혔습니다. 피고는 파일이 재생 직후 자동으로 삭제되도록 시스템을 설계했습니다. 이는 이용자가 파일에 대해 어떠한 소유나 통제도 할 수 없도록 피고가 ‘원천 차단’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결국 2심은 이용자가 ‘TTS’ 버튼을 누르는 행위는 단순한 기능 실행 명령에 불과하며, 실질적으로 오디오 콘텐츠를 만들고 관리하며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주체는 피고 기업이라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기업은 사적 이용 면책을 주장할 수 없고, 원고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 됩니다.

 

판결이 뒤집힌 이유: 기술적 종속성과 영리성

 

1심과 2심이 달라진 결정적인 이유는 AI 기술 환경에서의 ‘주도권’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있습니다. 1심은 이용자의 ‘행위(클릭)’라는 물리적 현상에 집중했다면, 2심은 그 행위를 둘러싼 ‘시스템적 통제권’과 ‘영리적 구조’에 집중했습니다.

 

이용자에게는 생성된 결과물을 영구히 소장하거나 다른 곳으로 옮길 권한이 전혀 없었습니다. 오직 피고가 정해둔 방식(실시간 재생 후 삭제)으로만 소비할 수 있었습니다. 2심 법원은 이러한 기술적 종속성을 고려할 때, 이용자를 주체적인 창작(또는 복제) 행위자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는 AI 서비스 제공자가 단순히 ‘도구’만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도구를 통해 산출되는 결과물의 생성 방식과 유통 과정을 지배하고 있다면 그 법적 책임 또한 져야 한다는 ‘규범적 책임론’을 확인해 준 것입니다.

 

주의: ‘사적 이용’을 넘어선 공개 행위의 위험성

 

그렇다면 이용자는 언제나 책임에서 자유로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번 판결은 이용자가 해당 콘텐츠를 앱 내부에서 단순히 ‘청취’하는 경우에 한해 이용자의 책임이 없거나 사적 이용으로 면책된다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만약 이용자가 별도의 녹음 프로그램을 이용해 AI가 읽어준 오디오북 소리를 녹음한 뒤, 이를 유튜브나 블로그, SNS 등에 올린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는 저작권법상 ‘전송권(공중송신권)’ 침해에 해당합니다.

 

법원은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공간에 저작물을 게시하는 행위는 ‘개인적 이용 또는 가정 및 이에 준하는 한정된 범위’를 명백히 벗어난 것으로 봅니다. 특히 유튜브 업로드와 같이 공중이 접근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것은 사적 이용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며, 설령 수익을 창출하지 않더라도 저작권 침해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1심 법원 역시 이용자가 불법 파일임을 알면서도 이를 다운로드하거나 유통하는 경우에는 사적 이용 복제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AI가 생성해 준 결과물이라도 불법 복제물이 포함되거나 포함될 가능성이 있는 것을 인지하면서 이를 무단으로 공개하거나 배포하는 행위는 이용자 본인에게 직접적인 민·형사상 책임을 불러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시사점: AI 시대, 책임의 무게중심 이동

 

이번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은 AI 서비스 제공자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이용자가 시켰으니 우리는 모른다”라는 항변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AI 모델을 설계하고, 데이터를 학습시키며, 결과물의 생성 방식을 기술적으로 통제하는 기업이라면, 그 산출물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했을 때 ‘직접 침해자’로서의 책임을 질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물론 이 사건은 아직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지 않았으므로 최종적인 결론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AI 기업의 데이터 학습과 산출물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는 추세와 맞물려, 한국 법원 역시 ‘실질적인 이익을 얻고 과정을 지배하는 자’에게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법리를 구체화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AI 기술은 혁신적이지만, 타인의 지적 재산을 토대로 쌓아 올린 성이라면 그 대가를 정당하게 지불해야 합니다. 서비스 제공자는 라이선스 확보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하며, 이용자 또한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해서 불법 저작물이 포함된 경우에는 저작권에서 자유로운 ‘공공재’가 아님을 인식하고 무분별한 공유를 자제해야 할 것입니다. 기술의 발전 속도에 맞춰, 우리의 법적·윤리적 감수성도 함께 진화해야 할 시점입니다.끝.

[참고 판례: 서울고등법원 2024나2011618 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22가합541143 판결]

권단 변호사: DKL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지식재산권(IP) 및 IT 분야 전문 변호사로서 AI, 메타버스, 블록체인 등 신기술 분야의 법적 쟁점을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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