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 산업에서 음반제작자는 단순한 기술적 작업자를 넘어, 음반에 수록될 소리를 전체적으로 기획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중요한 주체입니다. 이 음반제작자에게는 저작인접권이라는 강력한 권리가 부여되는데, 실제 제작 과정에 여러 관계자가 얽혀 있을 때 누가 법적으로 음반제작자인지 판단하는 것은 복잡한 문제일 수 있습니다.
최근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법원 판결(서울중앙지방법원 2020가합575791)이 있어, 그 내용을 사례 중심으로 알기 쉽게 해설해 드리고자 합니다.
사건 개요: 음반 제작과 투자, 그리고 유통을 둘러싼 분쟁
이 사건의 원고(A)는 음반 기획/제작 및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영위하는 자로서, 음반 제작/판매 회사인 주식회사 C의 최대주주이자 등기이사였습니다. 피고(B)는 디지털 콘텐츠 개발, 공급 및 유통업체입니다.
사건은 피고 B가 C에 약 50억 원을 투자하며 시작되었습니다. 피고 B는 C의 신주를 인수하는 계약(이 사건 주식인수계약)을 체결하였고, 이 계약에는 신주 인수에 관한 내용 외에 피고 B가 ‘C와 원고가 제작하는 음원’에 대하여 독점적 유통 권한을 가진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후 피고 B는 C 등과 여러 차례에 걸쳐 음반 제작에 투자하고 해당 음반을 독점적으로 판매/유통하는 음원판매대행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러한 계약들을 통해 총 6개의 음반(이 사건 각 음반)이 발매되었습니다.
그런데 원고 A는 자신이 이 사건 각 음반의 기획, 작곡가/작사가 섭외, 녹음 진행/편집 등 전반적인 과정을 총괄 지휘하고 비용까지 부담했으므로, 자신이 음반제작자로서 저작인접권을 가진다고 주장했습니다. 피고 B가 원고 A의 허락 없이 이 음원들을 무단 유통하여 막대한 수익(약 20억 원)을 얻었으므로, 저작인접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 또는 부당이득 반환을 청구한 것입니다.
쟁점 및 관련 법리: ‘음반제작자’의 기준은 무엇인가?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과연 원고 A가 이 사건 각 음반의 ‘음반제작자’에 해당하는지 여부였습니다.
저작권법상 음반제작자는 저작인접권의 주체로서 보호받습니다. 법은 여러 차례 개정을 거치면서 음반제작자의 정의를 명확히 해왔는데, 개정 연혁에 따르면 음반제작자는 음을 음반에 고정하는 데 있어 전체적으로 기획하고 책임을 지는 자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실연(가창, 연주)을 하거나 연출/지휘 등 사실적·기능적인 기여를 하는 것만으로는 음반제작자가 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음반제작자는 [음반의 저작인접권을 자신에게 귀속시킬 의사로 녹음 과정을 전체적으로 기획하고 책임을 지는 ‘법률상의 주체’]를 의미합니다.
법원의 판단: 왜 원고는 제작자가 아닌가?
서울중앙지방법원 제62민사부는 원고 A가 이 사건 각 음반의 음반제작자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20가합575791). 그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 ‘기획’의 주체: 음반제작자로서 ‘기획’했다는 것은 사실적·기능적 행위보다 그러한 행위를 하도록 만드는 주체로서의 지위가 중요합니다. 법원은 이 사건 각 음반의 제작/유통 과정에서 주도적으로 일을 진행하며 기획한 자는 원고가 아니라 C 또는 그 자회사들(C 등)로 보인다고 판단했습니다. 피고 B와의 음원판매대행계약 당사자가 모두 ‘C 등’이고 원고는 포함되지 않았으며, 이 계약들은 C 등이 음반을 기획/제작하고 원천 콘텐츠를 보유함을 전제로 체결되었습니다. 또한 C는 분기 보고서나 회사 소개서를 통해 이 사건 각 음반 중 일부를 스스로 제작/유통했다고 홍보했습니다. 원고 A가 C의 제작이사로 근무한 기간에 음반이 제작되었고, C 대표이사의 증언도 원고의 주된 역할이 작사가, 작곡가, 가수 섭외였다는 취지였습니다. 이러한 점들은 원고가 C의 제작이사로서 기능적 역할에 기여했음을 시사할 뿐, 법률상 주체로서 음반제작을 기획했다고 보기 어렵게 합니다.
- ‘책임’의 주체: 음반제작에 대한 ‘책임’은 성공 시 이득의 주된 수혜자가 되고 실패 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사건 각 음원판매대행계약에 따르면, 음반 판매 수익의 분배 및 제작비 반환 의무 등 성공에 따른 이익과 실패로 인한 손해는 모두 피고 B와 C 등이 나누게 되어 있습니다. 원고 A가 이 사건 각 음반으로 인한 이익이나 손해에 관하여 책임을 진다는 내용은 계약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C 대표이사의 증언 역시 원고에게 음반 관련 수익을 직접 지급한 내역이 없다는 점을 뒷받침했습니다.
- 제작 비용 부담: 통상적으로 음반제작자가 제작비용을 부담하므로 이는 중요한 판단 지표입니다. 원고 A는 비용을 모두 지출했다고 주장했으나, 이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금융거래내역, 세금계산서 등 자료를 제출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C 대표이사는 C가 음반 제작 비용을 부담했다는 취지로 증언했습니다.
- 대중적 인지도 및 추정 규정: 원고 A는 자신이 음반제작자로 널리 알려져 있고 상을 받았으므로 저작권법상 저작인접권자로 추정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은 원고 A가 언론에 음반제작자로 보도되거나 상을 받은 사실은 인정했지만, 이는 법률상 주체로서의 음반제작자인지 여부와 무관하게 사실적·기능적 행위를 담당한 경우에도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나아가 저작권법 제64조의2는 음반 제작자의 실명 등이 음반에 일반적인 방법으로 표시된 경우 추정력을 인정하는데, 이 사건 각 음반의 CD와 앨범 재킷에는 ‘C’ 및 ‘Ⓟ&Ⓒ [연도] C’가 명확히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 기호는 음반에 관한 저작인접권을 의미하는바, 이는 C가 이 사건 각 음반과 관련하여 자신의 실명을 일반적인 방법으로 표시했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따라서 오히려 C가 저작인접권자로 추정될 여지가 크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사정들을 종합할 때, 법원은 원고 A가 이 사건 각 음반 제작에 있어 사실적·기능적으로 기여한 바는 있으나, 음반의 저작인접권을 자신에게 귀속시킬 의사로 전체적으로 기획하고 책임을 지는 법률상의 주체로서의 행위를 한 음반제작자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판결의 시사점: 문서화와 명확한 역할 정립의 중요성
이 판결은 음반 제작 과정에서 여러 주체가 관여할 때, 누가 법적인 ‘음반제작자’로서 저작인접권을 보유하게 되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단순히 창의적 기여를 하거나 제작 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며, 음반 제작 전반을 법률적으로 기획하고 재정적 책임을 지는 주체임이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또한, 계약서에 역할과 책임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고, 음반 자체에 저작인접권자임을 명시하는 ‘Ⓟ‘ 기호와 함께 실명을 표시하는 것이 법적인 권리 추정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함을 시사합니다. 복잡한 음악 산업 환경에서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보호받기 위해서는 계약 관계를 철저히 문서화하고, 법이 정한 방식에 따라 권리 관계를 명확히 표시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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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9. 디케이엘파트너스 법률사무소 권단변호사 작성. 끝.